내 영어가 부끄러워서 말을 아끼는 분께

받아영 · 2026년 7월 20일 · 3분 읽기

한글과 영어가 섞인 메모지가 붙은 노트

영어로 대화하는 자리에서 말을 아끼게 만드는 걱정이 둘 있어요. 내 발음이 안 좋다는 생각, 그리고 콩글리시가 튀어나올까 하는 걱정이요. 둘 다 겪어 봤는데 실제로 제 대화를 막은 건 그 둘이 아니라 말을 안 하고 넘긴 시간이었어요.

발음은 먼저 끝낼 수 있는 과목이 아니에요

“발음 좀 다듬고 나서 회화 시작하려고요.” 이 말을 하는 분을 많이 봤고 저도 오래 그 말을 했어요. 그런데 발음은 끝이 없어서 이 순서로는 회화가 영원히 시작되지 않아요.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순서가 소통의 구조를 거꾸로 알고 있다는 거예요. 상대는 내 소리를 낱개로 채점하지 않아요. r과 l이 좀 뭉개져도 강세 위치와 문장의 박자가 맞으면 상대의 머릿속 사전이 단어를 찾아내요. 반대로 모든 자음을 정확히 발음해도 강세가 엉뚱한 데 있으면 검색이 실패해요. banana를 앞에 힘줘서 말해 보면 바로 알아요. 소리는 다 맞는데 못 알아들어요.

그러니까 발음 연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별 소리 교정은 소통에 관한 한 후순위예요. 먼저 잡아야 하는 건 강세와 리듬인데 이게 고약해요. 혼자서는 늘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거울은 강세를 못 들어요. 녹음해서 들어 봐도 내 귀는 내 의도를 알아서 관대하게 채점해요. 맞았는지는 상대가 알아들었는지로만 판정돼요. 채점자가 나여서는 안 되는 과목인 거예요.

그래서 순서를 뒤집는 게 맞아요. 발음이 완성된 다음에 말하는 게 아니라 말하면서 발음이 다듬어져요. 틀린 강세는 상대의 Sorry? 가 그 자리에서 잡아 주고, 통한 강세는 대화가 이어지는 걸로 확인돼요. 밖에서 발음만 다듬는 건 물에 안 들어가고 수영 자세를 교정하는 일이에요.

콩글리시는 셋 중 하나예요

실제로 대화해 보면 콩글리시는 셋 중 하나인데, 그중 둘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냥 통하는 것들. 핸드폰이라고 해도 문맥이 있으면 알아들어요. 노트북도 마찬가지예요. laptop이 표준이지만 notebook도 사전에 있는 말이라 대개 통해요. 이런 단어에서 멈칫하지 말고 문장을 하나 더 말하는 게 나아요.

귀엽게 틀리는 것들. 아이쇼핑(window shopping), 셀카(selfie), 스킨십(physical affection) 같은 것들이에요. 못 알아들으면 상대가 물어보고, 설명해 주면 오히려 대화가 한 토막 늘어요. 제 경험상 외국인들은 콩글리시를 흥미로워해요. 한국에선 이걸 이렇게 부른다는 얘기 자체가 훌륭한 스몰토크 소재예요.

진짜 조심할 몇 개. 뜻이 다르게 박혀서 오해를 만드는 소수만 챙기면 돼요.

  • 미팅: 한국에선 소개팅 뜻으로도 쓰지만 영어 meeting은 회의뿐이에요. 소개팅은 blind date.
  • 커닝: cunning은 교활하다는 형용사예요. 시험 부정행위는 cheating.
  • 화이팅: fighting은 싸움이 났다는 말이에요. 응원은 Good luck이나 You got this.
  • 서비스: 식당에서 공짜로 주는 그 서비스는 It’s on the house예요. 영어 service로 말하면 못 알아들어요.

이 정도만 피하면 나머지 콩글리시는 사고를 안 쳐요.

그래서 오늘 그냥 말하시면 돼요

인도 영어, 싱가포르 영어, 필리핀 영어 전부 억양과 어휘가 달라요. 그 사람들은 자기 영어를 부끄러워하면서 말을 아끼지는 않아요. 세계에서 영어로 말하는 사람의 다수가 비원어민이고, 영어는 이미 그들끼리의 공용어예요.

걱정하던 발음이 실제로 문제였던 경우도 생각보다 적어요. 받아영 통화에서 발음을 먼저 지적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예요. 못 알아들으면 되묻고, 무슨 말이었는지 맞혀 보고, 통화가 끝나면 흔들렸던 낱말을 리포트에 남겨요. 그렇게 몇 통 하고 나면 대부분은 “생각보다 잘 통하네”로 끝나요.

완벽한 영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통하는 영어를 오늘 쓰는 쪽이 도착도 빨라요. 통했으면 그건 이미 영어예요.

말이 길었네요
3분이면 아실 텐데

가입도 카드도 없이, 전화 한 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