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도 존댓말이 있는데 우리가 못 읽는 이유
받아영 · 2026년 6월 26일 · 2분 읽기

“영어는 존댓말이 없어서 편해요.” 자주 듣는 말인데 반쯤 틀렸어요. 영어에도 격은 있어요. 다만 한국어처럼 어미에 붙어 있지 않고 문장 구조에 흩어져 있어서 한국인 귀에 잘 안 들려요.
같은 부탁을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 Send me the file.
- Can you send me the file?
- Could you send me the file?
- I was wondering if you could send me the file.
한국어로 옮기면 넷 다 “파일 좀 보내 주세요”가 돼요. 그런데 영어에서는 네 번째를 상사한테 쓰고 첫 번째를 친한 동료한테 써요. 순서가 뒤집히면 어색해요. 첫 번째를 처음 만난 상대에게 쓰면 무례하고, 네 번째를 옆자리 동료에게 쓰면 뭔가 불편한 일이 있나 싶어져요.
우리가 놓치는 이유
한국어는 격을 어미 하나로 처리해요. “보내”와 “보내요”와 “보내 주시겠어요”가 같은 자리에서 달라져요. 그래서 우리는 문장 끝을 듣는 훈련이 되어 있어요.
영어는 격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요. 조동사(can·could·would), 과거형, 의문문 여부, 문장 길이. 길수록 정중해진다는 것도 규칙 비슷한 건데, 한국인 학습자에게는 이게 규칙으로 안 배워져요. 학교에서 could가 can의 과거형이라고 배우고 끝나거든요.
번역기가 특히 약한 자리
이 층위가 번역기가 제일 자주 뭉개는 부분이에요. 한국어 “보내 주세요”를 영어로 옮기면 대개 Please send me를 주는데, 상대가 상사인지 후배인지에 따라 그게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어요. 번역기는 그 관계를 몰라요.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예요. I was wondering if you could를 “혹시 가능하시다면”으로 옮기면 뜻은 맞는데, 실제로 그 문장이 실제로 쓰일 때의 무게는 안 넘어와요.
정확도가 아니라 관계를 모른다는 문제라, 모델이 커진다고 저절로 해결되지 않아요. 누가 누구에게 어떤 사이에서 하는 말인지는 문장 안에 안 적혀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익히나
이건 외워서 되는 종류가 아니에요. 정중함의 단계표를 만들어 외운다고 실전에서 골라지지 않아요. 상대의 반응으로 익혀요.
너무 딱딱하게 말하면 상대가 웃으면서 편하게 대해 줘요. 너무 편하게 말하면 상대가 살짝 정색해요. 그 미묘한 반응을 몇 번 겪으면 감이 생겨요. 문법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감각이고, 실제로 말을 주고받아 봐야 생겨요.
영어에 존댓말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못 듣고 지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몇 년을 해도 이 부분만 그대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