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회화는 프랑스어의 길을 갈지도 몰라요
받아영 · 2026년 5월 28일 · 2분 읽기

“번역기 다 되는데 영어를 왜 배워요?” 이 말, 절반은 맞다고 생각해요. 문서 번역, 메뉴판 읽기, 메일 초안 같은 기능으로서의 영어는 이미 기계가 더 잘해요. 그 절반을 인정하고 나면 남는 질문이 재미있어져요. 그럼 영어는 없어지나요.
없어지지 않아요. 자리를 옮겨요. 그리고 그런 일이 처음도 아니에요.
프랑스어는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 외교의 공용어였어요. 조약문도 프랑스어로 썼고, 상류층이 프랑스어를 못 하면 대화에 못 끼었어요. 1차대전 이후 그 자리를 영어에 내줬는데, 그 뒤로 프랑스어가 사라졌냐면 아니에요. 지금도 UN과 EU의 공용어이고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공용어예요. 다만 한국에서 프랑스어를 배우는 사람 대부분은 필요해서 배우지 않아요. 하고 싶어서 배워요.
여기 역설이 하나 있어요. 언어가 그 자리로 옮겨 가면 그 언어의 값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직접 하는 사람이 더 귀해져요. 모두가 해야 해서 하는 것에는 희소가치가 없어요. 안 해도 되는데 하는 것부터가 취향이고 소양이에요. 피아노를 생각해 보면 쉬워요. 음원이 넘치는 시대에 연주 능력의 실용 가치는 0에 가깝지만, 직접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어느 자리에서든 다르게 보여요.
영어 회화가 지금 그 길목에 있어요. 이어폰 번역이 완성되는 날 통역으로서의 영어는 끝나요. 그런데 그날 이후에도 기계가 못 가져가는 장면이 남아요. 농담이 끼어드는 타이밍, 통역을 거치지 않고 눈을 보며 주고받는 속도, 상대의 언어로 직접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전하는 성의. 번역 이어폰을 끼고 앉아 있는 사람과 서툴러도 자기 입으로 말하는 사람은 다른 대접을 받아요. 지금도 그렇고, 번역기가 완벽해질수록 더 그럴 거예요.
그러니까 “번역기 시대에 영어를 왜 하나”의 답은 이래요. 해야 해서 하는 시대가 끝나 가고, 하면 달라 보이는 시대가 와요. 필수 과목일 때는 남들만큼 하면 됐지만 그 자리에서 내려오면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요.
어느 쪽에 설지는 각자 정할 일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요. 영어는 시험 점수로 증명이 안 되고 입으로만 굴러가요. 저희가 전화를 거는 회사를 만든 것도 그래서예요. 읽고 쓰는 건 이미 기계가 하고 있으니까요.